[수필] 그들은 거기에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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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들은 거기에 모여 있었다
  • 송장길 (언론인, 수필가)
  • 승인 2021.01.24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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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언론인, 수필가)
송장길(언론인, 수필가)

삭풍이 살갗을 얼리는 강추위에도 종합병원에는 환자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버스나 택시, 승용차에서 내리면서 그들은 한결같이 심란한 표정으로 서둘렀다. 코로나 방역으로 출입이 제지돼 정문 통과의 절차를 기다릴 때도 너나없이 근심에 싸인 채 초조한 기색이었다. QR코드를 입력하고 체온을 재는 과정에서는 다소 허둥대거나 불안감에 휩싸여 있음이 역력했다.

병원 안은 이미 그렇게 들어온 인파로 가득했다. 잰 걸음으로 해당 부서를 찾아가는 이들, 보호자에 기대서 여리여리하게 움직이는 환자들, 휠체어를 타고 굴러가는 성치 않은 몸들이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환자들의 시선은 눈 높이 아래로 떨어져서 허공에 걸려 있거나 거미줄처럼 공간에 널려서 흐느적거렸다. 말소리들은 소음이 되어 쉰 절규로 떠돌아다녔다. 병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환자 이송 카트 하나가 빠르게 달려갔다. 카트의 바퀴와 뒤 따르는 이들의 신발이 빨라서 상황의 긴박함을 알렸다. 걸개에 매달린 링거병도 심하게 덜렁거렸다. 언뜻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는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영영 가버리고 말 것인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여기라는 느낌이 뇌리에 끼어들었다.

신경과에는 줄잡아 30명도 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예약을 하고 달려왔을, 길게는 몇 달 전에 일정이 잡혔을 환자들은 여기에 모여 오랜 동안 또 기다렸다. 진료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시간은 5분 내외인데, 진이 다 빠졌다 싶을 때에야 호명하여 데려가는 지경이었다. 의자에 삐딱하게 기댄 고령의 할아버지, 딸에게 고개를 파묻고 죽은 듯 누워 있는 노파,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두드리면서도 순서판을 연상 올려보는 중년 여인, 전화통화를 그치지 않는 깡마른 젊은 여성, 불안해하는 가족의 손을 쥐고 있는 나, 모두가 분명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시름의 끝은 생멸의 경계에 닿아 있지 싶었다.

이승이냐 명부냐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저승사자로 여겨졌던 의사는 의외로 평범한 젊은이였다. 좁은 공간에서 책상 위 컴퓨터를 계속 응시하면서 간단히 증세를 물은 뒤 확실한 진찰을 위해 PET-CT와 MRI영상을 찍자고 지시하듯 처방했다. 의사의 설명이 미진해서 질병의 원인과 병세의 진전, 환자가 할 일 등을 더 묻자 답변은 단순, 간략하게 돌아왔다. 퇴행성이고, 치료는 오래 계속될 것이며, 수술을 해도 완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소견이었다. 환자의 묵은 궁금증에는 미흡했지만 의사는 질문을 서둘러 잡도리하고 다음 순서로 넘어갈 태세였다. 진료의 과정은 야짤스럽게 신속히 진행됐고, 의사의 시간표를 따라 영상 촬영은 2주일 뒤, 그 결과로 다시 진료하는 일정은 한 달 뒤로 잡혔다.

“어찌 보면 의사들은 의료시설에 입점한 자영업자 같아요. 주어진 설비와 매뉴얼, 시간을 활용해 쌓아가는 실적에 따라서 평가되지요” “의사 윤리의 출발점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제네바 선서와는 거리가 먼 현상이네요” “진료가 폭주하니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치겠다’는 숭고한 서약은 많이 희석돼 있습니다. 그나마 직업의식은 의료인들 사회에 면면히 흐른다고 봐요. 정말 헌신적인 의사도 있고요” “진정한 의술을 여유 있게 펼칠 수 있도록 넉넉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크네요” “무엇보다 의사들이 재화에서 자유로워져야 더 정성 어린 의료행위가 꽃 필 것입니다. 요원한 일이지만요” 국내 5대 의료기관의 의료원장 한 분과 사적으로 식사하며 나눈 대화는 얼마나 병원들이 경영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는지, 의사들이 의술의 신성함에서 어떻게 벌어져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인류를 질병에서 구하려고 연구된 첨단의 의학이 의료기관의 미비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충분히 미치지 못하고, 고적한 실험실이나 의학 전문서적, 힘 있는 상류층에게만 맴돌고 있다는 탄식이 그의 말 속에 섞여 있었다.

다음에 진료를 받을 일정과 준비사항을 설명해주는 상담요원은 모든 과정을 숙지하고 있어서 반드레하게 알려주고, 정해 주었다. 지나치게 형식적이었지만, 그래도 환자들이 헤매지 않도록 짚어주는 안내가 고마웠다. 지하의 구내식당은 오긋하고 붐볐다. 그 한 쪽 귀퉁이에 부녀로 보이는 노인과 약관의 여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젊은 여성은 식성이 좋아 보였고, 노인은 깨작깨작 먹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건강과 와병은 한 공간에서 그렇게 판이한 모습이었다. 환자는 다행히 회복될 수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언젠가는 병에 걸릴 수 있으므로 길게 보면 누구나 병원의 한 지붕 아래에 들어있거나 들어올 숙명이 아닌가?

질병과 죽음은 신이 내린 시련일까, 조물주의 실수일까? 아니면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대상일까? 어느 쪽이든 인간들에게 언젠가는 씌워지는 굴레인데,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걱정에서 자유로워진다면 땅 위의 천국이리라. 병원을 나오자 차가운 북풍이 다시 달려들었고, 아내는 몸을 떨며 연거푸 옷깃을 여미었다. 병원 안은 따듯했지만, 그 안에 모인 질병과 죽음에의 두려움, 그것들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의지도 몹시 떨고 있었다는 생각이 무지근하게 떠올랐다. 택시를 타면서 병원을 다시 바라보았다. 인류가 지은 거대한 현대판 노아의 방주, 절망과 소망이 공존하는 거기에 그들은 있었다. 우리도 거기에 있었고, 다시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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