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 충격속의 크루즈(2) -마닐라만에서 필리핀 승무원 하선에 45일 걸려
상태바
[칼럼] 코로나 충격속의 크루즈(2) -마닐라만에서 필리핀 승무원 하선에 45일 걸려
  • 임수민(영국 큐나드 선사 크루즈 ‘’퀸 엘리자베스‘호 승무원)
  • 승인 2020.08.31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퀸 엘리자베스호 한국인 여승무원의 기록
필리핀 마닐라만에 정박중인 크루즈들
필리핀 마닐라만에 정박중인 크루즈들

그 모든 과정을 거듭하여 4월 19일, 퀸 엘리자베스호가 겨우 힘겹게 간 곳은 필리핀이었다. 당시 총 승무원 975명 중 필리피노는 635명이었다. 그중 Essential manning(최소운영 인원)을 제외한 532명을 먼저 송환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36일 동안 바이러스 감염자는 물론 없었고, 그 어떤 바이러스와의 접촉 가능성조차도 없었지만, 필리핀이 당시 제시한 조건은 14일 선내 격리 후의 하선이었다.

약속되었던 하선일 하루 전, 나를 포함한 20여 명의 동료가 2천 개에 이르는 짐을 일일이 회수하고 준비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그들의 하선은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취소되었고, 격리되어 집에 가기만을 기다렸던 동료와 그들의 하선을 준비한 우리 모두가 굉장히 실망한 날이었다.

실제로 약속한 선내 격리 14일이 훌쩍 지나 25일이 지난 5월 14일, 한 필리피노 바텐더가 바다에 빠지면 나를 구하러 올 터이고 그러면 육지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집에 가기 수월해질 터이니 객실의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버릴까 하는 충동을 혼자 이겨 내기 너무 힘들어 구조를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그는 이후 자발적 요청에 의한 24시간 시큐리티 요원의 감시 하에 선내 격리 45일이 지난 6월 3일에 하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 약속받았던 선내 격리 14일은 45일에까지 이르렀다. 일방적으로 필리핀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수차례 약속이 무산됨으로 인해 많은 갈등을 빚었지만 떠날 수도 없고 안 떠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평소에는 2주에 한 번 정도 물류 및 연료 공급, 쓰레기 처리를 해야 하는 크루즈. Anchorage(정박) 비용도 상당한데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항구 접안을 할 수 없었기에 물류 공급은 거대한 판자를 끌고 다니는 작은 보트를 이용해 겨우 힘겹게 할 수 있었다. 하선 작업 또한 항상 Tender boat(구명보트)를 통해서만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필리핀 외 다른 국적 승무원의 송환작업도 시작해야 했다. 해상 격리 63일이 지난 5월 17일, 33명의 영국인과 독일인의 본국 송환을 성사시키며 본격적인 송환이 매일같이 이뤄졌다. 5월 29일에는 마닐라만에 함께 정박해있는 계열사와 협력하여, 국가 차원에서 Commercial flight(상용 비행기)를 일제히 거부한 사우스아프리칸과 짐바브웨이안을 위해 Charter flight(전세 비행기)를 마련하여 송환했다.

​임수민(영국 큐나드 선사 크루즈 ‘’퀸 엘리자베스‘호 승무원)​
​임수민(영국 큐나드 선사 크루즈 ‘’퀸 엘리자베스‘호 승무원)​

6월 6일에는 계열사 홀랜드 아메리카 선사의 엠에스 유로담호로 계열사에 있는 모든 인도네시안을 Ship transfer(배에서 배로 이동하는 방법)하여 Charter cruise(전세 크루즈)로서 인도네시아에 직접 송환했다. 6월 15일에는 전세선이냐 전세기냐 말썽이 많았던 인디안을 전세기로 송환했다. 처음에는 우리 배와 함께 마닐라만에 정박을 시작했던 크루즈선이 4척 뿐이었는데 나중에는 32척으로 늘어났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