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들을 죽인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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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들을 죽인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 이정식 작가
  • 승인 2020.08.2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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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테자 알렉세이를 심문하는 표트르 대제(그림: 니콜라이 게)
황테자 알렉세이를 심문하는 표트르 대제(그림: 니콜라이 게)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1917년 3백년 만에 막을 내린 제정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군주로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낙후된 러시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엄청난 유럽식 개혁을 추진했고 유럽에 다가가기 위해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기까지 했다.

1703년 표트르 대제가 발트해에 면한 네바강 하구에 새로운 수도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도록 명령하자 많은 세습귀족들이 반발했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는 자기가 마음먹은 일을 철회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천도를 강하게 밀어붙여 1713년 마침내 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이전했다.

불만 세력이 황태자 알렉세이(1690~1718)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황태자 알렉세이는 표트르 대제가 버린 첫 황후 예브도키야 로프히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의 생모를 수도원에 유폐시킨데 대한 반감이 컸다. 그같은 반감 때문인지 알렉세이는 아버지 표트르 대제의 개혁정치에 대해서도 늘 불만을 갖고 있었다.

대제는 알렉세이가 후계자 수업을 게을리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특히 군사업무에 무관심 한데 대해서는 분개하기까지 했다. 알렉세이는 아버지와 달리 신체적으로도 허약했고 명석하지도 못했다. 사치스런면도 있었다. 표트르 대제는 알렉세이에게 “후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황태자의 자리를 박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알렉세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는 건강도 좋지 않고 황제의 재목이 못되니 후계권을 거두어 달라고 아버지에게 요청한 일도 있다.

아들을 늘 못마땅해 하던 표트르 대제는 알렉세이에게 후계자 수업을 잘 받지 않으려면 차라리 수도승이 되라고 했다. 그는 속으로 아들을 수도원에 유폐시킬 생각도 하고 있었다.

알렉세이는 1716년 어느날 아버지를 피해 오스트리아로 도피했다. 아버지는 이같은 도피를 왕권찬탈음모로 여겼다.

표트르대제, 후계자를 못 정하고 죽다

대제는 추밀원 총독 톨스토이 백작을 시켜 오스트리아에 있는 알렉세이를 설득해 러시아로 데리고 오는데 성공했다. 알렉세이는 돌아오자마자 황태자 지위를 박탈당하고 감금 상태가 됐다. 아버지가 직접 아들을 심문했다. 공모자를 대라고 했고 형리들에게 알렉세이를 고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문은 가죽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었다. 두세차례에 걸쳐 가혹한 매질이 가해졌고, 알렉세이는 1718년 6월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요새 감옥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표트르는 알렉세이가 죽기 이전부터 또다른 후계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알렉세이가 죽기 3년전인 1715년 리투아니아 농노 출신의 마르타 스카브론스카야와 결혼해 낳은 아들 표트르(*러시아에는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경우가 흔하다)가 있었다. 이 여인은 뛰어난 미모에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려서 결혼한 남편이 있었으나 전쟁터에서 표트르를 만나 그의 정부(情婦)가 됐고 이름도 예카테리나로 바꿨다. 그녀는 1712년 표트르 대제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황후 대관식까지 했다.

알렉세이가 그처럼 비참하게 죽고 난 후 표트르 대제는 예카테리나 사이에 난 새 아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는 그의 희망대로 되지 않았다. 알렉세이가 죽은 다음해인 1719년, 4살짜리 새 후계자도 죽고 말았던 것이다. 표트르 대제는 예카테리나와 사이에 열명쯤 아이를 낳았는데 모두 어려서 죽고 딸 둘 만 남았다. 그는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채 죽었다. 혼돈이 계속되다가 황후 예카테리나가 차르가 되었다. 그녀는 제정러시아의 여황제 시대를 연 첫 번째 인물이 됐다.

역사화 ‘알렉세이 황태자를 심문하는 표트르 대제’는 니콜라이 게(1831~1894)가 1871년에 그린 작품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들 알렉세이를 쏘아보는 아버지의 눈매가 매섭다. 부자지간의 따스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뭐고 권력이 뭔지, 잘난 아버지를 만난 불행한 아들의 모습을 니콜라이 게가 사건이 난지 한 세기 반이 더 지난 후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것인데 당시의 상황을 실감있게 잘 표현해 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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