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섯 임금의 국정 파트너 청렴 선비 '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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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섯 임금의 국정 파트너 청렴 선비 '황희'
  • 오응환 논설위원
  • 승인 2020.08.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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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환 논설위원
오응환 논설위원

여섯 사람의 왕을 섬기다 졸한 황희의 삶은 어떠했을까? 새삼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샀다.

황희는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판강릉부사 황군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황희는 14살 되던 해인 1376(우왕 2) 음직으로 복안궁녹사가 됐고 그 뒤 사마시와 진사시에 두루 급제했으나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했다.

그러나 창왕 원년인 1389년 문과에 또다시 합격, 이듬해 성균관 학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고려는 공민왕에서 우왕 창왕으로 왕위가 계승되면서 혼돈의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멸망하기에 이른다.

이때 황희의 나이가 30. 13927월 태조 이성계가 왕으로 즉위,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으니 연도별로 볼 때 딱 맞아떨어진다. 이성계는 고려의 무장이었다. 고려왕권이 주장했던 요동 정벌의 허와 실을 꿰뚫은 이성계는 뛰어난 정치 감각으로 새로운 왕조를 세운 것이 조선이다.

이때부터 황희는 조선의 백성이었지만, 선비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두문동으로 들어가 산속 생활로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다 당시의 정치 상황으로는 이도 여의치 않아 나이 어린 황희만 조선조정에 홀로 출사하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조선의 녹을 받고 공직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고려 시절에는 우왕과 창왕을 모셨고 조선 개국 이후에는 태조, 정종, 태종, 세종을 모시기까지 그의 삶은 그야 말로 영욕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성공한 관리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 덕분에 나는 황희를 책 속에서 만났다. 황희가 태어나서부터 9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인생역정을 접할 수 있었다.

고려가 멸망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가 忠臣不事二君(충신불사이군)의 뜻을 편 것과 조선 출사 이후 현실을 직시한 그의 탁월한 현실 정치 감각을 읽을 수 있었다.

태조와 정종에 이어 태종도 황희를 전폭적으로 신임해 모든 정사를 그와 같이 논의한 것도 그렇고 무려 18년간을 재상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도 그의 인품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태종이 황희를 크게 중용한 것은 뛰어난 그의 능력과 통치력, 올곧은 성품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황희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이조판서(지금의 행정안전부 장관)로 있던 태종 18(1418) 충녕대군이 세자에 책봉되자 이를 반대하다 결국에는 폐서인이 돼 지금의 파주 지방으로 유배된 것이다.

황희가 유배되던 그해 태종은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는데 황희의 유배지를 서울 쪽에서 더 먼 곳으로 옮겨버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황희는 5년을 넘게 귀양살이를 하는 가시밭길을 걷는다.

그러다 황희는 세종 4(1422)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관리로 복직한다. 이때 황희는 의정부 참찬으로 중용되는데 그의 나이 60세였다.

그 당시 60세는 노인 중의 노인으로 취급되는 시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왕의 외숙부(민무구민무질)들을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한 황희를 다시 중용한 것은 황희의 사람됨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닌가 생각된다.

이때부터 황희는 더욱 성숙한 정치를 펼친다. 강원도 관찰사, 좌의정에 이어 69세 되던 해 영의정 자리에 오른다.

그 당시의 영의정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칭호를 듣는 막강의 자리였다.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다. 그때부터 황희는 18년간을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수많은 일화를 남긴다. 황희에게 뒤따르는 수식어는 너무나도 많다. 청백리, 명재상, 불사조 등.

황희는 50년 이상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도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또 현실을 직시하고 내다 보는 예지력 또한 뛰어나 누구도 그의 통찰력과 행정력을 뒤따를 수 없었다 한다.

그리고 폐세자 사건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원칙을 중시한 그의 곧은 신념에서 얻어진 결실로 볼 수 있다.

황희는 나라에서 주어지는 녹봉을 민생 구휼을 위해 대부분 사용했고 자기 소유 토지 대부분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정착시키는 정책에 썼다고 돼 있다.

황금만능주의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을 일깨워준 한 권의 책에서 얻어진 황희의 삶이 더욱더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oj92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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