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호(江湖)에 즐비한 역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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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호(江湖)에 즐비한 역겨움
  • 송장길 (언론인, 수필가)
  • 승인 2020.08.15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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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친구가 약속을 깨면 가슴이 아리다.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앙금은 오래 남는다. 선택지를 놓고 저울질했음을 연상하면 더욱 언짢다. 이용당했다는 단서라도 보이면 분노까지 인다. 작은 등 돌림이나 큰 배신을 막론하고 우정이 세파에 잠식되는 일은 그만큼 아프다. 복잡 분망해진 시류를 따라 우정이 많이 변질되어 진정성은 점점 더 얕아지고 세속의 저속함에 찌들어 가고 있는 현실은 서글픈 일이다. 그런 얄팍함이 어우러져 세상이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머리가 지근거린다. ‘그렇더라도 대범하게 넘어가지 못하는가?’ 하고 뉘우치는 자신에게도 짜증이 난다.

송장길 (언론인, 수필가)
송장길 (언론인, 수필가)

주변의 대인관계에서 타산(打算)의 흔적이 보일 때도 역겹다. 무릇 인간관계에서 인연과 그 활용은 칼날로 베이듯 분명해야 깔끔한데, 두리뭉실하거나, 혹 겹치는 느낌이 들면 거부감이 솟는다. 그게 사회생활 아니냐며 얼렁뚱땅 매도 당하면 답답해진다. 진실한 인간상은 아직도 최상의 미덕(美德) 아닌가. 상대가 어떤 불순한 낌새를 보이더라도 잘 다스려 탄탄하게 신뢰를쌓지 못했음을 자성할 때에도 쓸쓸하다. 인간관계에 변화가 일어났는지, 어떤 심리적인 변수가 작용했는지, 또는 무의식 중에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는지를 따져보는 일도 한심하다. 사람들 사이의 이해(利害)와 정(情)은 죽과 새알심처럼 엉겨 있을 진데~. 이성(異性) 간에도 일방적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느끼면 씁쓸하다. 남녀가 만나면 으레 정전기가 따르는 이치여서 살얼음 위를 걷듯 주의해도 그 미묘함은 엉뚱하고 날카롭다. 애정 문제에 초연하거나 관심이 적은 경우에도 오해는 불거지기 쉽다. 뒤 돌아서서 괜한 걱정이라고 손사래를 치는 입장도 유치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원초적인 본능과 심리에서 자유롭다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저잣거리에 나가면 소리 높여 통화를 하거나 끼리끼리 떠들어대는 법석이 주위의 영혼들을 막무가내로 앗아가고, 순서를 흩트리거나 작은 일에도 이기려는 치졸한 이기주의는 주위의 품격조차 떨어트린다. 아무리 특출한 부분을 내세워도 거리의 윤리성이 낮으면 선진사회라고 할수 없다. 당사자들이 공중의 금도(襟度)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독성을 풍기고, 후자는 연민을 부른다.

대저 자기보호와 경계의 셈법은 약삭빠른 시선과 긴장된 표정 뒤에서 예리하고, 자신과 타인 사이에 쌓은 벽은 보이지 않게 단단하다.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 또 모이는 성질의 대중은 군중심리를 따라 바람처럼 휩쓸리기 마련이지만, 들여다보면 그 속에도 각자의 대차대조표가 얽히고설켜 난삽하다. 믿음이 결핍된 세상은 한낱 모래성 아닌가? 어느 집단이건 신뢰할 수 있는 공동선(共同善)이 바로 서있지 않으면 건강지수는 떨어지고, 사회적 비용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대중이 환호하는 공연장 무대에서는 가무(歌舞)와 연기가 날로 더 눈부시다. K-팝으로 칭송되는 남, 여 그룹의 군무와 노래는 맹렬히 훈련되어서 재빠르고도 기하학적이다. 아프리카 원시인들의 민속춤이 원조일 그 노래와 춤사위는 마이클 잭슨 류(流)의 기교한 동작을 뛰어 넘어 놀랍게 정교하고 날렵하다. 때로는 신기하도록 현란하고, 기계적이다. 볼거리로서 감흥은 자아내더라도 독창성이 결여된 그런 훈련된 기술로 대중의 혼을 사로잡는 가무가 오락의 바람직한 트렌드일까?

영상매체는 IP의 번성을 타고 분열을 거듭하며 대중 속에 파죽지세로 뻗어 나간다. 다중매체의 영향권에 점점 더 예속돼 가는 인간은 이제 <호모 IT>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역겨움의 진앙지는 저속한 대중문화의 컨텐츠가 풍기는 악취이다. 소프트웨어 안에서 우글거리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진부하고 유치하다. 출생의 비밀과 불륜, 사랑의 삼각관계, 사술(斯術)과 폭력, 상속 싸움, 유치하고 감각적인 대사 등은 TV 드라마의 진부한 단골 주제로서 오랫동안 우려먹고도 부단히 안방과 거실을 차지하고 있다. 연예 프로그램에서도 억지스럽고 낮 간지러운 소재와 대화들이 차고 넘친다.

“미디어는 마사지”라는 개념(토론토 대학 에드워드 맥루한 교수)이 시사하듯이 독자와 시청자들은 저급한 수준의 미디어에 노출되어 세뇌당하고 있는 셈이다. 전향적인 창의와 격조가 결여된 프로그램들이 대중문화를 격하시키고, 대중사회를 정체화 시키는 현실은 인류 문화와 역사의 진화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중문화와 대중사회는 도도한 강물처럼 흐른다. 때로는 맑고 잔잔하지만, 때로는 흙탕물의 급류로 변해 무섭다. 급속히 대중화가 진행되는 오늘날에는 기존의 가치체계를 무작스럽게 허물면서 지나치게 표피적이면서 집단이기주의로 치닫고, 제어하기도 어렵다.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방향타를 잡을 수 있겠지만, 인텔리겐챠들은 나약하고, 폴리티시안들은 오염돼 있다.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은 이쪽저쪽 눈치를 보며 허우적대고, 정치인들은 득표계산에 여념이 없으니 원대한 세계관과 역사성을 염두에 둔 혜안으로 건강한 세상을 지도해 주리라는 기대는 고개를 떨어트린다. 독이 오른 듯한 정치인들의 저속한 언어와 배타적인 행태는 이기주의의 광기에 휩싸여 오히려 건전한 문화와 사회의 진작을 거스르고 있다. 그 영향권 아래에는 더럽혀진 탁류가 덩달아 출렁이고, 전향적이고 상서로운 기운은 묻혀 버린다.

시민들의 일상은 모래성 위를 지나간 게들의 자국 같지 않은가? 우정은 세속화에 빠져들고, 주변은 계산기 위에 올려져 득실거리는 잔꾀에 노출돼 있으며, 경제활동도 배면에서는 술수의 난장판 같다.

뜻있는 철인(哲人)은 어느 외진 곳에서 목놓아 탄식하고 있을까? 어디 척박한 땅에서 불세출의 초인(超人)이 나타나 명징한 이기(理氣)로 어두운 세상의 길을 밝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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